바빠지고 싶었던 어린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어른이 되었다.
어렸을 때, 나의 소원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바쁘게 지내는 것이었다. 나의 언니를 비롯, 함께 놀던 동네의 언니 오빠들이 모두 네다섯 살 많았기 때문에 취학 전 나는 혼자였던 시간이 많았다. 딱히 혼자라고 하기에는 주로 엄마와 함께 였고, 동네 엄마들 틈에 앉아 밥을 먹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재롱을 떨거나, 엄마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다가 도움도 안 되는 일이지만 콩나물을 다듬는 일 같은 소일거리를 배워 돕곤 했다.
아침잠도 없었던 나는 일찍 일어나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늦잠 잤다며 허둥지둥 아침밥을 먹고 골목 어귀에서 머리를 질끈 묶으며 뛰어가는 언니의 뒤에 대고 엄마와 손을 흔드는 일이 나의 아침 첫, 나름의 일이었다. 유치원을 다녀오고, 한참이 지나야 언니가 돌아왔다. 숙제를 해야한다며 바쁘게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내는 언니는 꽤 멋있어보였다. 아마 수학익힘책이나 자연관찰 등 교과서였을 것이다. 만들기를 완성해야 한다고 풀칠을 열심히 하던 옆집 언니와 축구에 빠져서 골목에서 어둑해질때까지 축구공을 가지고 놀던 옆집 오빠, 나만 빼고 모두가 바빠보였다. 우리집에 자주 오던 대학생인 이모도, 사회인인 삼촌도, 바쁜데 잠깐 들렀다고 했다. 바쁘니 어서 가라는 인사까지, 모두 서로를 바쁘게 대하고 일상을 바쁘게 여겼다.
어린 나의 눈에 바쁜 것은 곧 멋있는 것이었다. 내가 얼른 한 살이 더 먹고 싶고,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할 일이 많아져서 심심할 틈이 없게 되는 것, 시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몇 번 없이도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 눈 뜨자마자 부리나케 무언가를 할 수 밖에 없이 나를 사방군데서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자,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커갈수록 정말 바빠졌다. 공부하느라,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대학생 때는 노느라,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하느라, 결혼하고 나서 출산 후에는 아이를 키우느라, 매일 바쁘고 바쁨이 당연하고 바쁘지 않은 나를 상상하지 않았다. 바빠서 멋있었고 바쁘다는 게 우쭐했다. 그리하여 바쁜 인생을 신명나는 춤에 취한 사람처럼 즐겼다.
“와! 내가 이렇게 바쁘다니! 드디어 그렇게 됐어!” 라고 감동하며, 눈 뜨면 할 일이 군인처럼 줄을 맞춰 서는 느낌이었다. 자, 오늘도 뛰어볼까, 스위치를 켜고 에너지를 불태우는 하루를 보내면서 석유를 다 태운 난로마냥 연료가 닳으면 침대에 붙은 몸이 꿀처럼 딱 붙어서 숙면의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그것은 중독적이고 짜릿하고 달콤했다.
그렇게 ‘바쁨’을 인생에 들여놓고 싶어하던 나는 이제는 그것을 내 인생에서 꺼낼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잠깐동안 마시는 커피 한 잔, 소파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는 시간,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동안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내 손과 발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마흔이 지나고 나서야 바쁘다는 것이 꼭 멋있는 어른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휴식에 목이 마르고 마르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린날의 나에게로 돌아가서 많이 자고 많이 쉬라고, 그런 시간이 쉽게 다시 오지 않는다고 알려주면 좋겠다. 바쁜 어른들을 부러워하던 네 살 꼬마아이를 떠올리면 조금 웃음이 난다. 너, 바쁜 것이 그리 멋있었더냐, 어리긴 어렸구나, 하고 귀여워해주고 싶다.
이제는 적당히 바쁘게, 적당히 쉬어가며 완급 조절을 잘 해 내는 인생을 살고 싶다. 축 늘어지는 것도 하루 이틀일테니, 누우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인간의 간사함을 핑계로 요리조리 적당할 방법을 찾는 어른이 되고야 말았구나, 생각한다.
어린이들, 많이 놀고 많이 쉬어요…🙂